Story of Music and Architecture
건축과 음악 이야기
건축과 음악 이야기
배나무 (pearwood)는 노란빛을 띄는 anigre만큼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불그스름한 색과 균일한 grain은 적당히 햇살에 그을린 여인의 피부처럼 참 아름답다. 그런데 이 pearwod veneer에서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직경 1/8~1/4" 정도의 아주 진한 색(거의 검정에 가까운)의 점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배에 포함되어 있는 당분이 나무 표면에 굳어서 생긴다고 한다. 건축가의 추천으로 건축주는 이 아름다운 wood veneer를 많은 돈을 들여 넓은 로비의 벽면에 사용하기를 원하는데, 이 점들이 눈에 띈다. 마치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에 크고 작은 진한 색의 점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처럼.
pearwood의 장점을 버리고 싶지는 않고, 이 점들을 없애고 싶은 마음에 건축주는 이 점을 주변의 색깔과 동일한 바알간 물감으로 stain할 것을 원한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요청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물에 대한 애착으로 심혈을 기울여 pearwood의 색과 거의 동일한 custom color를 선정해 주었고, 이제 넓은 면적의 배나무 veneer는 검은 반점 하나 없이 아름답게 벽면을 장식한다.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건축가에게 그 건물의 건축주로부터 전화가 온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점들이 점점 색이 옅어져서 이제는 흰 점들이 사방에 보인다고. 그래서 너무 보기가 싫다고.
당황한 건축가는 wood veneer전문가와 함께 건물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 붉은 색이지만 주변보다 확연히 밝은 점들을 발견한다.
전문가의 의견은 이러하다. pearwood의 경우 veneer로 만들어져 설치된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건물 내의 공기와 습도 그리고 직사광 또는 천공광에 의해 자연스럽게 색이 더 진해진 것이다. 그 당시 당분이 모여 진한 붉은 색 (거의 검정에 가까운)의 점들은 custom color의 코팅이 입혀졌고, 몇 년이 경과해도 주변환경에 반응하지 않아 실은 그 색이 함께 변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주변이 자연스럽게 변색되는 동안 점점 색도가 뒤집혀서 밝은 반점, 즉 이제는 지울수 없는 흠으로 영원히 남게된다.
요즘은 성형수술이 정말 보편화 되었다. 얼굴 때문에, 몸매 때문에 평생을 우울하게 지내드니, 잠시간의 고통과 거금을 들여 수술을 받는 편이 외모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긴 한데, 내가 진정 사랑하는 여인, 자식, 그리고 친구라면 딱히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럽게 진해지는 pearwood처럼, 눈에 띄였던 점들도 나이가 들며 늙어가는 피부와 함께 더 이상 거슬리기보다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연륜'으로 보이는, 그런 얼굴과 피부를 가진 이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뜻보면 미인이고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운 동안이지만, 보톡스로 인해 어색한 표정과 중력을 거슬어 치켜 올려진 눈썹과 가슴을 가진 이와 오랜 시간을 지내야 한다면, 내내 하얀 반점을 가진 pearwood 생각을 머리속에서 지울 수 없을 것만 같다.
언젠가 동양건축을 전공한 교수님께서 서양과 동양 건축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신 것을 기억한다. 서양 건축은 공간을 특정 용도에 맞게 잘 나누는 데에 있고, 동양의 그것은 빈 공간 (여백)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형성된다는 의견이다.
1993년 모 건축 대학원의 석, 박사과정과 함께 모인 건축대담에서 건축가 김기석 씨는, 이 빈 공간 - 마당 - 을 시, 공간의 이중적 개념으로 설명했다. 곤장을 때리는 장소부터 타작을 하고 고추를 말리는 일, 그리고 아이들이 팽이를 치는 장소까지, 사용 목적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공간인 '마당'은, "우리가 이런 '마당'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라는 순수 한국어 표현에 있어서는 어떤 특정 상황, 시점이라는 시간의 개념이 동시에 내재 되어있는 것이다.
공간 예술인 건축에서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은 '마당'. 동시에 어떠한 목적으로든 사용될 수 있는 빈 시간.
원 곡의 멜로디와 가사에서 받은 영감을 짧은 몇 마디 속에 표현해야 하는 솔로 - 특히 미리 준비하지 않은 improvisation - 에서 많은 음 들을 쏟아붓는 데에 급급했던 나의 solo line에 대해 모 재즈 피아니스트는 이렇게 코멘트한 적이 있다. '... 좋은데요... 빈 공간이 없어 멋진 연주를 음미할 시간이 없네요.'
그렇다. 건축에서 그렇듯이 음악에도 '빈 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빈 공간은 건축의 '마당'처럼 정해져 있지 않은 장소와 시간에 청취자에게 주어진 곳이다. 숨을 쉬어가는 곳이든, 멜로디 라인을 음미하든, 아님 하품을 하든.
하얀 벽과 바닥, 그리고 정사각형의 흙 위에 심겨져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유리 속에는 멈춰버린 것만 같은 실내 공간이 있고, 반대쪽 유리 건너편에는 다시 하얀 벽과 바닥, 그리고 나무 한 그루.
너무 순결해서 손 댈 수 없는 그녀의 뒷 모습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 놓여 있던 Gaspar House의 디자이너인 캉포 바에자(Campo Baeza)를 만난 적이 있다. 잠시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친절하게도 Gaspar House의 concept을 직접 스케치해서 나에게 선물했다.
세미나 도중 그는 일본 건축가 타다오 안도에 대해 언급했다. 그 때가 90년대 말 이었으니까,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안도의 작품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일본이라는 Local 건축가였던 때 부터 캉포 바에자가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았다고 한다. 대양을 건너고 대륙을 넘어 각기 기름 종이에 스케치를 하던 두 건축가였지만, 바에자의 눈에는 무언가 남들이 보지 못하던 것이 비춰졌음에 틀림없다. 바에자는 안도의 작품을 여러 곳에 소개하고 인터뷰도 주선했다고 한다. 그 후 안도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Pritzker Prize를 수상하게 된다.
Harvard Graduate School of Design의 건축과 Chair였던 Preston Scott Cohen은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첫 해에 나의 스케치와 디자인은 그에게 끊임없이 무시 당했었지만 (사실 무시라기 보다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해 이후 3년 동안 디자인과 논문지도 교수가 되었다. 그와의 Desk Critique에서 (책상 위에 도면을 놓고 일대일로 대화하는 시간) 그는 '시게루 반'이라는 건축가의 작품에 대해 언급했다. 당신 시게루 반의 작품은 선택된 materiality - Bamboo - 때문인지 건축 잡지에 서서히 실리기 시작한 때 였지만, Scott은 나에게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구체적인 이유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 이유는 내가 찾아야 할 몫이었겠지 - 흘려보내지 말라는 여운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십여 년이 지난 2014년, 시게루 반은 Pritzker Prize를 수상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여러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겠지만, 아마도 가장 뛰어난 필요 조건은 어떤 무형의 지적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리는 것 아닐까? 아니 평가라기 보다는 가치, 또는 이것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껴지는, 또는 '나는 이제껏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 아닌가' 하는 감탄일 지도 모른다.
얼마 전 단 한번 함께 연주할 기회가 있었던 모 피아니스트 음반 발매 콘서트를 다녀왔다. 그녀가 선택하는 노트와 노트 사이 남기는 빈 공간을 통해 나는 그녀의 음악 사이를 비행할 수 있었다. Jim Hall이나 초기 Brad Mehldau가 그러했다. 정말 멋진 연주지만 듣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연주들이 있고 - 예를 들면 Guitar Synthesizer를 사용한 Pat Metheny의 끝없는 즉흥 연주나 Yngwie Malmsteen의 32비트 Harmonic minor scale 속주 - 이와는 달리 가사가 없는 악기들의 연주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느껴지고 함께 숨을 쉴 수 있는 연주가 있다. 그녀가 작곡하고 편곡한 곡들은 후자에 속한다. 듣는 사람들이 들어갈 공간이라 함은, 가까이서 함께 의사 소통하는 다른 연주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아직 내 귀에 연주자 간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그녀의 연주가 그러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아직 내 귀가 열리지 않은 탓이리라), 최소 끝말 잇기는 분명히 들렸다.
나는 피아노나 기타의 톤에는 마약처럼 중독이 되어있는 듯하나, 이상하게도 프럼펫이나 바이얼린 처럼 high register의 melody 악기의 소리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이 약 맛이 느껴지는 연주가 있었는데... Kind of Blue 앨범에 수록된 So What에서의 Miles Davis의 트럼펫이었다. 나는 그의 연주를 듣다가 정신이 몽롱하고 구토가 나올 지경에 까지 이른 적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에서 15분 거리, 뉴욕 맨하탄 30번가의 한 스튜디오에서 리허설 없이 녹음된 이 곡은, 사전에 악보나 모티브를 쉐어하지 않고 녹음 당일에 Miles Davis가 각 연주 세션 들에게 D Dorian, Eb Dorian의 chord progression과 어느 순서로 솔로를 할 것인지를 알려준 상태에서, 몇 번의 Take를 거쳐 완성되었다 (소문처럼 단 1번의 take로 녹음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짐). 불후의 Bill Evans가 피아노에 있었고, Jimmy Cobb과 Paul Chambers라는 당대 최고 중 하나인 리듬 세션, 그리고 John Coltrane과 Cannonball Adderley가 연주했다는 사실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그리고 팔리고 있는) 음반인 된 이유를 뒤받침한다.
이 곡에서의 Miles의 연주는... 노트 두개 뿐인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저 깉은 바다의 심연과 공중의 구름을 나는 듯하다. 사실 D dorian과 Eb Dorian scale에서 사용하는 노트를 적어보자면 D E F G A B C + Eb F Gb Ab Bb B Cb Db 아닌가?
key가 변경될 때 F나 B note로 연결하면, 전체 연주 중 다이아토닉 스케일 바깥에 있는 노트는 한 옥타브 12노트 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끝까지 모티브는 노트 단 두개. 끊임없이 가라앉거나 부양하는 느낌...
이 콘서트에서 그런 연주를 들었다. 그의 이름은 Takuya Kuroda.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뉴욕의 뉴스쿨에서 프럼펫을 전공한 뮤지션인데,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침전과 부양을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연주에 귀 기울여 보련다. 혹 누가 아는가? 제 2의 Miles Davis가 될는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멋진 차의 키를 받아 딜러 샾을 나가는 순간, 그 자동차의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한다 (depreciation). 만약 나의 꿈 중, 자랑 중 하나가 멋진 포르쉐를 모는 것이라면, 나의 삶은 시간이 갈 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는 셈이 된다. 이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 Rick Warren
친구가, 동료가, 선생님이, 배우자가, 당신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하며, 당신에게 감사해 하고 있다는 격려와 감사의 말(affirmation)을 듣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뿌듯하며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음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상대의 affirmation은 나의 가치를 수직 상승(appreciation = to raise its value)시키고, 그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김춘수의 '꽃'에서 사실 몸짓은 변한 것이 없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 꽃으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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